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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금리는 경제 활동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금을 하면 이자를 받고, 대출을 하면 이자를 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바로 ‘마이너스 금리’입니다. 예금한 돈에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수료처럼 비용을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대출을 받으면 이자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일부 경우에는 돈을 빌린 데 대해 보상처럼 금액을 더 받는 일도 생겼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안겨주었고, "어떻게 금리가 음수가 될 수 있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마이너스 금리가 왜 생겼는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그리고 실제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금융 환경을 이해하고, 앞으로 다가올 경제적 변화를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이너스 금리는 왜 등장했는가?
마이너스 금리는 전통적인 경제 상황에서는 거의 상상하기 힘든 개념입니다. 기본적으로 금리는 자본의 시간 가치를 반영하는 수단으로, 돈을 빌리는 사람은 자금을 미리 사용하는 대가로 이자를 지불하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미래에 더 많은 돈을 받는 보상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당연해 보이던 원리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심각한 경기 침체는 전 세계 중앙은행들로 하여금 기존의 통화정책만으로는 경제를 살리기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습니다.
중앙은행은 일반적으로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경기 부양을 시도합니다. 기준금리를 낮추면 시중 금리도 하락하고, 이는 기업과 가계의 대출 부담을 줄여 소비와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금리를 내릴 수 있는 한계점이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론적으로 ‘제로 하한선(zero lower bound)’을 이야기해왔습니다. 이 지점을 넘어서면 더 이상 금리 인하를 통한 자극 효과가 의미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유럽, 일본 등지의 중앙은행들은 이론적 한계를 깨고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는 2009년 세계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를 실험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2014년에 예치금리를 음의 영역으로 설정하였습니다. 일본은행(BOJ) 역시 2016년부터 일부 금융기관의 초과지준에 대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기기보다는 소비자나 기업에 대출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습니다. 즉, 돈이 유휴 상태로 중앙은행에 묶여 있기보다는 실제 경제 활동에 투입되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또한 마이너스 금리는 디플레이션을 막고, 기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됩니다. 장기간 경기 침체와 낮은 물가 상승률은 소비와 투자를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소비를 미루게 하고,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를 보류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악순환이 지속되면 경제는 점점 더 침체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은 비전통적 정책수단의 하나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마이너스 금리는 비정상적인 경제 상황, 즉 극심한 불황과 디플레이션, 그리고 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의 한계 상황에서 등장한 궁여지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정책이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 경제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섰는지를 말해주고 있으며, 동시에 앞으로의 정책 수단이 더욱 창의적이고 실험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마이너스 금리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마이너스 금리가 실제로 경제 시스템 안에서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리의 흐름이 금융 시스템 전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이너스 금리는 보통 중앙은행이 적용하는 정책금리 중 일부에 해당합니다. 특히,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초과지준에 대해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은 상업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예치할 때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합니다. 이는 시중은행 입장에서 중앙은행에 자금을 맡기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그 자금을 대출이나 투자 형태로 시장에 풀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시중은행은 중앙은행으로부터 금리를 직접 받거나 내는 구조 외에도, 이 금리를 바탕으로 자산운용 전략을 변경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되면 국채 수익률도 함께 하락하거나 음의 수익률을 보이게 됩니다. 이는 안전 자산에 투자해도 수익을 얻지 못하므로, 리스크가 더 크더라도 주식이나 부동산, 대체자산 등으로 투자처를 다변화하려는 유인이 커집니다. 결과적으로 금융시장의 자산 흐름 자체가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차입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설비 투자나 사업 확장에 대한 부담이 완화됩니다. 또한 소비자 측면에서도 대출 금리가 낮아지거나 심지어 0% 가까이 되기 때문에, 주택 구매나 자동차 할부, 신용대출 등에서 더 과감한 소비를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마이너스 금리는 경제 전체의 소비와 투자를 자극하려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는 대출의 총량만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예금 금리가 0% 이하로 떨어질 경우, 개인은 은행에 돈을 맡기기보다는 현금으로 보관하려는 유인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규모로 현금을 보관하는 것이 어렵고 위험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개인이나 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감수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은행은 예금 수신의 유인을 잃게 되고, 고객에게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신규 예금 유치를 꺼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게 됩니다.
한편, 마이너스 금리는 외환시장에서도 강력한 영향을 미칩니다. 한 국가의 기준금리가 마이너스인 경우, 그 나라 통화의 매력도는 낮아지게 됩니다. 이는 해당 통화의 환율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하며, 결과적으로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일본과 유럽은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적극적으로 채택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면 통화가치의 경쟁적 절하, 이른바 ‘환율 전쟁’으로 번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점은, 마이너스 금리가 장기화되면 금융기관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중대한 도전을 준다는 점입니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예대마진, 즉 예금과 대출 사이의 금리 차이로 수익을 내는 구조인데, 마이너스 금리 상황에서는 그 차이가 극도로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됩니다. 이는 은행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고, 중장기적으로는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이너스 금리는 단순히 ‘금리를 낮춘다’는 개념을 넘어서,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자산 흐름, 대출 활동, 소비 심리, 환율, 금융기관 수익성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입니다. 이러한 정책은 신중하게 설계되어야 하며, 경제 주체들의 반응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점진적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마이너스 금리의 장단점과 부작용
마이너스 금리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많습니다. 먼저 장점부터 살펴보면, 가장 핵심적인 이점은 소비와 투자의 유인을 강화하는 데 있습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가계는 저축보다 소비를 선택하게 되고, 기업은 차입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에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이런 방식으로 총수요를 자극하면 경기 회복을 촉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이너스 금리는 실질금리를 낮추는 효과를 줍니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인플레이션을 뺀 값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통해 실질금리를 낮출 경우 가계와 기업의 실질 부채 부담이 경감됩니다. 이는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중요한 정책적 대응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과 유럽처럼 오랜 기간 낮은 인플레이션과 성장률에 시달리는 국가에서는, 통화정책의 마지막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에는 분명한 부작용도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금융기관의 수익성 악화입니다. 은행은 예대마진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데, 마이너스 금리로 인해 이 마진이 극도로 줄어들거나 역마진이 발생하는 상황까지 이릅니다. 이로 인해 은행의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궁극적으로는 자본건전성이나 금융시스템 안정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유럽의 대형은행들이 수년째 수익성 문제에 시달리는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자산시장에 거품을 유발할 가능성입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투자자들은 수익을 찾아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게 됩니다. 이는 부동산, 주식, 암호화폐 등 다양한 자산군에서 가격을 과도하게 끌어올릴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자산버블 붕괴의 위험을 높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후 부동산 가격 급등 현상이 관측되었고, 유럽 일부 국가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세 번째 부작용은 연금이나 보험 같은 장기 금융상품의 수익률 감소입니다. 연기금이나 보험사는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채권에 주로 투자하는데, 금리가 낮아지면 이러한 자산에서 기대 수익이 줄어들고, 이는 수익보장에 어려움을 줍니다. 마이너스 금리가 장기화될 경우, 노후 자산관리와 같은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산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반 대중은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마이너스 금리는 이 상식을 뒤엎습니다. 이는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 저하를 초래할 수 있으며, 급격한 자산 이동이나 현금 선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단행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퍼지면, 오히려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반작용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마이너스 금리는 단기적 경기부양에는 일정한 효과를 줄 수 있지만,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열쇠는 아닙니다. 오히려 잘못 운용될 경우 금융시장의 왜곡, 시스템 리스크, 사회적 불균형 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다른 재정정책이나 구조개혁과 병행하여 매우 신중하게 활용되어야 합니다.
마이너스 금리를 마주한 우리의 자세
마이너스 금리는 기존 경제학 교과서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실험입니다. 불황과 디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은행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정책은 단기적으로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고, 환율 안정과 실질 부채 경감을 도모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금융기관의 수익성 악화, 자산시장 왜곡, 연금 수익률 저하 같은 심각한 부작용도 함께 존재합니다.
우리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단순히 숫자상의 변화가 아니라, 경제 전반의 흐름과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특히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이에 맞는 투자 전략, 자산관리 방식, 그리고 정책 대응이 요구됩니다. 또한 마이너스 금리는 결국 중앙은행의 정책 수단이 제한된 상황에서 나오는 비상 대응이라는 점에서, 재정정책과 구조 개혁이 병행되어야만 지속가능한 경제 회복이 가능하다는 교훈도 함께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새로운 시대를 단순히 낯설고 이상한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변화된 환경 속에서 우리의 금융 의사결정과 정책 판단을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로써 보다 유연하고 회복력 있는 경제 체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