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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조세제도를 개편하고 있습니다. 글로벌화, 고령화, 디지털 전환, 탄소중립 등 굵직한 흐름은 국가 재정에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세수의 안정성과 공평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전환세제’입니다.
전환세제란 기존의 조세 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꾸기보다는, 특정 세목에서 다른 세목으로 과세 부담을 이전시킴으로써 세수의 총량은 유지하되 조세의 방향성과 목적을 조정하는 방식의 조세 개편 전략을 말합니다. 즉, 세수 중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사회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세금 체계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전환세제는 단순히 세금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조세 구조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재정비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재정을 확보하고, 국민의 조세 부담을 공정하게 배분하며, 나아가 환경 보호나 노동시장 개선 같은 정책적 효과도 함께 도모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전환세제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필요성, 구체적인 전략 유형, 그리고 실제 적용 사례와 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전환세제의 개념과 등장 배경
전환세제는 ‘세금의 방향을 바꾼다’는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거나 기존의 세율을 조정하면서, 총 세수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세수 중립성이 핵심 원칙으로 작용하며, 이 개념은 단순히 세금을 덜 걷거나 더 걷자는 주장이 아니라, 세금의 구조적 재편을 통한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정의를 동시에 실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전환세제가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세수 기반의 약화입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동 인구는 감소하고, 연금이나 복지 지출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근로소득세나 소비세 중심의 기존 조세 구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새로운 세원 확보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둘째는 디지털 경제의 확산입니다. 과거 산업 기반의 조세 체계는 유형 자산과 고정된 사업장을 기준으로 설계되었으나, 오늘날의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은 국경을 초월해 수익을 창출하면서 기존 조세 체계로는 제대로 과세하기 어려운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법인세 기반의 세수가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새로운 과세 논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셋째는 환경 문제와 기후 위기입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친환경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서는 세금이 환경 유인을 반영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환경세나 탄소세를 도입하면서 동시에 다른 조세 항목을 조정하는 전환세제가 주목받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전환세제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추진됩니다. 첫째는 환경세 도입과 소득세 또는 사회보장세 인하의 조합입니다. 이는 ‘녹색 조세 전환’으로 불리며, 유럽 각국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디지털세와 전통적 법인세 구조의 전환입니다. 디지털 기업에 실질적 과세를 적용하면서, 전통적 기업에 대한 세율은 유지하거나 낮추는 방식입니다. 셋째는 부동산세 강화와 노동세 인하의 조합입니다. 이는 자산 보유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근로 활동에 대한 부담을 줄이려는 전략입니다.
결과적으로 전환세제는 단기적인 조세 증가나 감소를 넘어서, 경제 구조와 국민 생활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정책 도구’로 기능합니다. 국가의 재정은 세금 없이는 운영될 수 없으며, 세금의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따라 경제 주체들의 행동도 달라집니다. 따라서 전환세제는 조세의 기술적 논의를 넘어 정치적,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전환세제의 주요 전략 유형 – 환경, 노동, 디지털 전환 중심의 조세 이동
전환세제의 핵심은 단순한 세목 변경이 아닌, 정책 목적에 맞게 세부담의 방향을 전략적으로 조정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전환 전략은 국가의 경제 구조, 인구 구조, 산업 구조에 따라 달라지지만,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 세 가지 축은 환경세 중심 전환, 노동세 완화 전환, 그리고 디지털 경제 대응 전환입니다. 이들 전략은 각각의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면서도 세수 중립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설계됩니다.
첫 번째 전략은 환경세 중심의 전환입니다. 이는 탄소세나 에너지세를 확대하는 대신, 소득세 또는 사회보장세를 인하하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일반적으로 탄소 배출량이 많거나 오염 유발 활동에 과세를 강화하여 친환경 행동을 유도하며, 동시에 국민의 직접적인 세부담을 줄여 조세 저항을 최소화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1990년대 초반부터 환경세 전환 정책을 시행해 왔습니다. 이들은 탄소세와 에너지세를 인상하면서도 노동 관련 세금을 줄였고, 결과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은 감소하고 고용은 증가하는 이중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녹색 전환세제는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는 목적에 그치지 않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산업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고, 신재생에너지 투자나 친환경 기술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기반이 됩니다. 특히 EU는 탄소국경세(CBAM)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과세를 도입하면서, 무역과 환경을 연결한 글로벌 조세정책을 구상 중입니다. 이에 따라 환경세 중심 전환세제는 세계적인 정책 표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 전략은 노동세를 완화하고 다른 세목으로 전환하는 방식입니다. 노동에 대한 과세가 과도하면 고용 창출에 부담이 되고, 비정규직 확대나 노동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는 사회보험료나 소득세 부담을 줄이되, 자산세나 소비세로 조정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독일은 2000년대 초반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고용세 부담을 낮추고, 간접세 비중을 확대하는 조세 전환을 시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특히 청년층 고용 확대, 자영업자 부담 완화, 저소득층의 실질소득 증가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다만 소비세 중심 구조는 역진성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저소득층에 대한 환급제도나 세액공제 정책이 병행되어야 전환세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전략은 디지털 경제에 대응하는 조세 구조 전환입니다. 디지털 플랫폼과 글로벌 IT 기업들은 물리적 사업장이 없기 때문에 기존 법인세 체계로는 적절한 과세가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OECD는 글로벌 최저법인세(GloBE)나 디지털세(pillar 1)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 세수 구조의 지각변동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국가별로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이 디지털세를 선도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이들은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 거대 디지털 기업의 이익에 대해 일정 비율로 과세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세수 확보 목적뿐 아니라, 국내 기업과의 공정경쟁을 위한 조치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조세는 기존 법인세를 보완하며, 장기적으로는 법인세 구조 자체를 디지털 경제에 맞게 개편하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이처럼 전환세제는 기존 세목 간의 균형을 재조정하며, 경제 활동의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인을 제공하는 정책 도구입니다. 환경 보전, 고용 안정, 디지털 경제 과세라는 다양한 목표를 세금 구조를 통해 실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신중한 정책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환세제의 실제 사례와 정책적 시사점 – 유럽과 한국의 비교를 중심으로
전환세제는 이론적인 개념에 그치지 않고 이미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세수 중립을 전제로 한 조세 구조 개편을 시도해 왔으며, 이들 사례는 한국에 중요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먼저 스웨덴은 대표적인 환경 중심 전환세제의 성공 사례입니다. 1991년 도입된 탄소세는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탄소세제였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인상되어 현재는 세계 최고 수준의 탄소세율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소득세와 고용 관련 세금을 점진적으로 인하함으로써 세수 중립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조세 수용성도 높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스웨덴은 이 조치를 통해 1990년 대비 GDP당 탄소배출량을 25% 이상 줄이고, 고용률을 높이는 성과도 달성했습니다.
또한 독일은 2000년대 초 ‘에코세제’를 통해 에너지세를 인상하면서 사회보장 기여금 일부를 인하한 바 있습니다. 이는 고용 창출에 기여하고,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가속화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독일은 이러한 정책을 장기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기업 및 노동계와의 사회적 대타협을 기반으로 전환세제를 설계했고, 이 점에서 타국에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프랑스와 영국은 디지털세를 선도적으로 도입한 국가입니다. 프랑스는 2019년부터 연 매출 7억5천만 유로 이상인 글로벌 디지털 기업에 대해 3%의 디지털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 법인세 체계를 보완하고 공정 과세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시도입니다. 영국 역시 디지털 서비스세를 통해 다국적 플랫폼 기업의 영국 내 매출에 대해 과세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향후 OECD 협의에 따라 글로벌 표준화될 전망입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전환세제에 대한 논의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입니다. 일부 탄소세 또는 에너지세 도입 논의가 있었으나, 본격적인 세수 전환을 전제로 한 체계적인 설계는 미흡한 편입니다. 또한 고용세 부담이 높은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세 경감을 위한 전환 전략이 부재하며, 디지털세 논의 역시 국제 협의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한국은 부동산세 중심의 세제 개편을 시도한 바 있으며, 이는 일부에서는 자산세 강화와 근로세 완화를 통한 조세 정의 실현의 초기 모델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조세저항이 극심했고, 세수 중립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평가도 존재합니다. 이는 향후 전환세제를 설계할 때 사회적 합의와 이해관계 조율이 필수적임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결과적으로 유럽의 사례는 전환세제가 단순한 기술적 조치가 아니라 정치적 리더십과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금은 국민의 삶과 직결되기 때문에, 세목 간 조정이 단순한 수치 조절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와 철학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전환세제는 정책 커뮤니케이션과 거버넌스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조세 정의 실현과 지속가능한 재정 구조를 위한 길
전환세제는 오늘날처럼 경제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재정지출이 확대되는 시대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조세 개편 전략입니다. 기존의 조세 체계가 더 이상 경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세수의 안정성과 조세 정의, 경제 유인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구조적 전환이 요구됩니다.
환경세 확대, 노동세 완화, 디지털세 도입 등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전환 전략이지만, 공통적으로 ‘세수 중립’을 기조로 한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하고 정치적으로도 수용 가능한 조세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탄소세처럼 사회적 비용을 내부화하고자 하는 조세는 단순한 수익 확보를 넘어 환경 보호, 공공의 이익 증진이라는 공통선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현대 조세 철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한국은 아직 전환세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고령화, 기후 위기, 디지털화 등 복합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조세 구조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이를 위해선 정치권, 시민사회, 학계, 산업계가 함께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조세 개편을 추진해야 합니다.
전환세제는 단순한 조세 개편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도구입니다. 세금이 국민에게 부담으로만 작용하지 않고, 사회를 더욱 정의롭고 건강하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 있도록 전환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실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